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것도 어려운 것인지?
작성자 김*수2026.07.05
존경하는 극동방송 운영자 김인수 PD님 에게
저는 교회를 안 다니고 집에서 성경책을 봅니다
그리고 유럽의 기독교를 존경합니다. 어려서 교회를 다녔지만
40년 정도 방학 중입니다.
지금은 집에서 성경내용 잠언을 좋아합니다
제가 교회를 가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아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과 그리스도의 윤리관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하나님 말씀과 그리스도의 기본윤리관에 중심을 두는
기독교인이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실 것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초등학교) 외할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니게 되었지요.
그곳 교회에서 그런대로 행복한 날들이었다고 기억나는데...
저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농촌마을에 있는 교회를
다녔지요.1966~19968
그런대로 행복했지요.
그러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저에게 어려운 환경이 닥쳐왔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고아나 다름없는 상태로 살아야 했습니다.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하고 그곳 교회에(제가 다녔던) 다니시는 장로님이 운영하는
제과점에서 일을 하면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지요.
밤12시에 잠을 자고 새벽4시에 일어나야 했지요.
빵을 만들기 위해 언제나 잠을 편히 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였지요.
그러나 어린 저에게 돌아오는 것은 피곤함 그리고 졸음을 참지 못하는 환경.
월급은 안 주었고 그래서 몸이 아파도 약국에 갈 수도 없었지요.
사실 그 제과점 운영자는 고아원을 운영했는데...
훗날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제과점에는 미국산분유, 밀가루, 버터, 설탕 등 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1972년도) 미국 선교 단체에서 고아원으로 많은 물자를
보낸 줄 알고 있습니다. 고아원으로 가는 선교 물품들(고아원 아이들 양식)
고아원 아이들에겐 일부 분유를 가져 다가 분유에 물을 타 주군 했지요
구호품은 고어원으로 가지 않았어요.
그 많은 구호품은 고아원으로 가야 했으나 대부분 제과점으로
가져와 빵을 만드는데 사용한 줄 알고 있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말해서 알았어요.)
그 제과점은 많은 돈을 번 줄 알아요. 그 돈으로 제과점 사장은 상당히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교회는 오래된 일본시대 지어진 건물이었고
사장의 아들은 기독교 대학을 갔고 추후에 목사가 되었다고함
그의 아들은 나를 노비라고 놀렸어요.
(제가 초등학교 시절 성탄절에 교회에서 빵을 나누어 주면 먹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 빵은 고아원 어린이들에게 주어야 할 빵인데...
저는 그 제과점을 그만두었고, 그 이듬해 서울로 올라와 공장에서 일을 했지요.
그리고 독학을 해서 고등학교졸업 검정고시합격을 했답니다.
그런대로 행복했고 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지요.
하지만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은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지요.
30여년이 지난 지금 저는 일본기업 도시바를 거쳐
독일계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면서 별 어려움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것도 어려운 것인지?
오늘도 퇴근길에 운전을 하면서 제가 자주보는 교회를 봅니다.
그 교회 벽에는 아래와 같이 큰 글씨가 보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나에게 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저는 생가 합니다
과연 무거운 짐이란 게 있는 사람이라면 눈에 들어올 터인데
과연 오늘날처럼 교회 목사가 설교하는 것이 마음에 평화를 줄까?
하지만 나는 마음에 평화가 왔다
마음의 평호화는 내가 성경을 읽으면서 얻어낸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을까?
이렇게 사연을 보냅니다.
저는 교회를 안 다니고 집에서 성경책을 봅니다
그리고 유럽의 기독교를 존경합니다. 어려서 교회를 다녔지만
40년 정도 방학 중입니다.
지금은 집에서 성경내용 잠언을 좋아합니다
제가 교회를 가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아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말씀과 그리스도의 윤리관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하나님 말씀과 그리스도의 기본윤리관에 중심을 두는
기독교인이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실 것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초등학교) 외할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니게 되었지요.
그곳 교회에서 그런대로 행복한 날들이었다고 기억나는데...
저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농촌마을에 있는 교회를
다녔지요.1966~19968
그런대로 행복했지요.
그러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저에게 어려운 환경이 닥쳐왔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고아나 다름없는 상태로 살아야 했습니다.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하고 그곳 교회에(제가 다녔던) 다니시는 장로님이 운영하는
제과점에서 일을 하면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지요.
밤12시에 잠을 자고 새벽4시에 일어나야 했지요.
빵을 만들기 위해 언제나 잠을 편히 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였지요.
그러나 어린 저에게 돌아오는 것은 피곤함 그리고 졸음을 참지 못하는 환경.
월급은 안 주었고 그래서 몸이 아파도 약국에 갈 수도 없었지요.
사실 그 제과점 운영자는 고아원을 운영했는데...
훗날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제과점에는 미국산분유, 밀가루, 버터, 설탕 등 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1972년도) 미국 선교 단체에서 고아원으로 많은 물자를
보낸 줄 알고 있습니다. 고아원으로 가는 선교 물품들(고아원 아이들 양식)
고아원 아이들에겐 일부 분유를 가져 다가 분유에 물을 타 주군 했지요
구호품은 고어원으로 가지 않았어요.
그 많은 구호품은 고아원으로 가야 했으나 대부분 제과점으로
가져와 빵을 만드는데 사용한 줄 알고 있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말해서 알았어요.)
그 제과점은 많은 돈을 번 줄 알아요. 그 돈으로 제과점 사장은 상당히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교회는 오래된 일본시대 지어진 건물이었고
사장의 아들은 기독교 대학을 갔고 추후에 목사가 되었다고함
그의 아들은 나를 노비라고 놀렸어요.
(제가 초등학교 시절 성탄절에 교회에서 빵을 나누어 주면 먹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 빵은 고아원 어린이들에게 주어야 할 빵인데...
저는 그 제과점을 그만두었고, 그 이듬해 서울로 올라와 공장에서 일을 했지요.
그리고 독학을 해서 고등학교졸업 검정고시합격을 했답니다.
그런대로 행복했고 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지요.
하지만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은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지요.
30여년이 지난 지금 저는 일본기업 도시바를 거쳐
독일계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면서 별 어려움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그것도 어려운 것인지?
오늘도 퇴근길에 운전을 하면서 제가 자주보는 교회를 봅니다.
그 교회 벽에는 아래와 같이 큰 글씨가 보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나에게 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저는 생가 합니다
과연 무거운 짐이란 게 있는 사람이라면 눈에 들어올 터인데
과연 오늘날처럼 교회 목사가 설교하는 것이 마음에 평화를 줄까?
하지만 나는 마음에 평화가 왔다
마음의 평호화는 내가 성경을 읽으면서 얻어낸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을까?
이렇게 사연을 보냅니다.